엽흔

혼자서 술을 마실 때

혼자서 술을 마실 때는 번잡스런 안주를 준비하지 말 일이다.

안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간절했던 술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

담백한 멸치 몇 마리와 고추장.

멸치는 크도 작도 않은 중멸치를 선택하기로 한다.

멸치를 먹을 때는 꼬리를 잡고 머리부터 입안에 넣기로 한다.

고추장은 입안이 얼얼할 만큼 매울대로 매워야 한다.

멸치가 입안에 들어가기 전 약간의 어떤 충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담배를 허용하듯.

고추장은 멸치에게 형체의 소멸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매운 최면을 걸어줄 것이다.

물고기는 작살로 잡은 것이 제맛이 난다.

그물로 잡거나 낚시에 걸린 고기는 삶의 막바지에 와 있음을 예감하고 절망하는 사이에

몸이 여위어서 맛이 떨어진단다.

제등을 닮은 푸른 물살을 유영하다 작살이 꽂히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쪽같이 죽어주는 것은 매우 개운하고 신선한 말로이다.

죄수들은 고문당할 때 애원한다. 제발 단숨에 죽여달라고.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는 게 아닌 죽음과 삶을 오르내리는 것

그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인디언 썸머. 서늘한 가을에 내리쬐는 광휘로운 햇살 한 줄기.

동식물에게 신의 은혜로운 축복이다.

겨울이 임박한 그 서늘한 등줄기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

인디언 썸머의 주인공인 사형수가 말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다고.

한 마리의 멸치도 영혼이 떠난 육신이 박제될 때

인디언 썸머의 광휘로운 햇살이 식은 몸을 뒤척이게 했을 것이다.

혼자 술을 마실 때 사치스러운 안주를 탐하는 것은

멸치 몇 마리 상에 올리는 것보다 쓸쓸한 일이다.

혼자임을 생각하면서 멸치 한 줌을 꺼내서 머리부터 차근차근 씹어줘야 한다.

머리를 붙잡고 꼬리부터 씹어줄 때는 멸치가 끝까지 불행하기 때문이다.

단숨에 어금니로 멸치의 머리를 씹어주는 순간

그들이 존재로서 해방될 테니까 말이다.

혼자서 술을 마실 때 깊은 생각에 빠지기보다는

멸치나 고추장 같은 부수적인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로 한다.

단지 마지막 잔을 단숨에 털어 넣는 순간

멸치의 공허한 눈빛을 닮아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한 줌의 멸치에게도 등 굽은 슬픔, 반쯤 벌린 아픔의 틈새,

초연하게 꼿꼿한 삶의 형태가 다채로운 형상으로

가슴에 안겨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이다.

혼자서 술을 마실 땐

나의 목 안 가득 차오르는 서러운 생각을 안주로 씹는 게 아니라

멸치의 생각을 꼼꼼히 씹는다.